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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의 반찬은 몇 가지였나? 궁중 음식의 규범과 변화

by 조선시대역사 2026. 1. 8.

서론 

“조선의 왕은 하루에 몇 가지 반찬을 먹었을까?” 이 단순한 질문은 조선 왕실의 식사 문화, 위계질서, 정치와 음식의 관계까지 아우르는 깊은 역사적 함의를 담고 있다. 왕의 수라상(御膳)은 단순한 식탁이 아니라, 체계적이고 정교한 규범에 따라 엄격히 구성되었으며, 음식의 수와 종류, 조리 방식, 식기와 상차림의 배열까지 모두 신분, 권위, 건강, 계절, 정치 상황에 따라 달라졌다. 이 글에서는 조선 시대 왕실에서 사용된 궁중 음식의 체계와 규범, 그리고 시대에 따른 변화 양상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단순히 ‘9첩 반상’이라는 외형적 틀을 넘어, 궁중 음식이 지닌 사회문화적 의미와 음식 속 권력의 흐름을 함께 탐색하고자 한다.

왕실의 반찬은 몇 가지였나? 궁중 음식의 규범과 변화

본론

1. 수라상의 구성 – 왕의 식사는 어떻게 준비되었나

조선 시대 왕의 식사는 ‘수라(御膳)’라고 불렸으며, 하루 두 끼를 원칙으로 했다.
조선 초기에는 왕도 백성과 마찬가지로 하루 세끼를 먹었으나, 중기 이후부터는 점심과 저녁만 섭취하는 하루 2식 체계가 일반화되었다.

(1) 식사의 구성 체계

왕의 식사는 수라간에서 준비되었고, 그 구성은 다음과 같은 틀에 따라 진행되었다.

  • 밥 2종 (메밀밥, 찹쌀밥 등)
  • 국 2종 (맑은 국, 진한 탕)
  • 찌개 1종
  • 김치 1~2종
  • 장류 (된장, 간장, 초장)
  • 메인 반찬 (찬) : 일반적으로 12첩(열두 가지 반찬)

여기서 중요한 점은 ‘12첩 반상’이 고정된 원칙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12첩은 가장 전형적인 형식이었지만,
계절, 왕의 건강 상태, 정치 상황에 따라 반찬 수는 유동적으로 조절되었으며, 실제로는 9첩, 11첩 등으로 제공된 날도 많았다.

2. ‘12첩 반상’은 진짜였을까? – 상차림의 실제

현대인에게 익숙한 '12첩 반상'은 조선의 전통적인 왕실 음식 구조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전통 요리 복원 과정에서 재구성된 형식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궁중 음식 조리서(수운잡방, 규합총서 등)에 따르면, 반찬의 수는 고정되지 않았다.

(1) 상차림의 구성 원칙

‘첩(帖)’은 곧 ‘반찬 하나’를 의미하며, 조선 왕실의 식사는 궁중 예법에 따라 다섯 가지 음식군을 조화롭게 포함해야 했다:

  • 육류
  • 어패류
  • 채소류
  • 장류 및 발효식품
  • 건조 또는 절임류

음식이 지나치게 많거나, 특정 재료가 반복되면 상서롭지 못하다 여겨졌다.
따라서 어육, 탕, 찜, 구이, 나물 등 조리 방식의 다양성도 중요하게 여겨졌다.

(2) 대표적인 수라 예시

조선 중기 기준으로 정리된 수라상의 일반적인 구성은 다음과 같았다.

  • 밥 2종 (백미밥, 잡곡밥)
  • 국 2종 (장국, 곰탕)
  • 탕 1종 (닭백숙, 어탕 등)
  • 찜 1종 (돼지편육, 대구찜 등)
  • 구이 2종 (갈비구이, 민어구이)
  • 나물 3종 (도라지나물, 시금치나물, 고사리무침)
  • 젓갈류 1종
  • 김치류 2종 (백김치, 섞박지)
  • 장류 3종 (된장, 초장, 간장)

→ 총 약 15~17종의 음식이 나갔으며, 왕이 입에 대는 음식은 8~10종이 채 되지 않았다. 나머지는 형식 유지와 의례 목적이었다.

3. 왕실 음식 규범의 핵심 – 단순함 속의 정교함

조선의 궁중 음식은 겉으로는 풍성해 보이지만, 실상은 정제된 단순함과 조화를 추구했다.
화려함보다는 절제된 형식, 균형 잡힌 영양, 심리적 안정, 예의에 부합하는 구성이 중요한 원칙이었다.

(1) 계절에 따라 바뀌는 식단

  • : 나물 위주, 해독 작용 음식
  • 여름: 삼계탕, 냉국, 더위 예방 음식
  • 가을: 단백질 보충, 찜·구이
  • 겨울: 보양식, 곰탕류, 김치류 강화

→ 궁중 음식은 절기와 왕의 건강 상태에 따라 유연하게 변화했고, 이를 전담하는 상궁과 사옹원 관원들은 매일 진상기록과 건강 보고를 통해 식단을 조정했다.

(2) 신분에 따른 음식 격차

왕과 세자, 왕비의 수라상은 구성의 격차가 있었다.
예를 들어, 왕은 12첩 반상을 기본으로 하지만 세자는 9첩, 왕비는 11첩, 후궁은 7첩 내외로 조정되었다.
이는 식사의 격을 통해 위계질서를 강화하려는 상징적 장치였다.

4. 시대별 변화 – 조선 전기와 후기는 어떻게 달랐나

조선 전기(태조~세조 시기)는 절제된 유교적 실용주의가 강조되어 수라상도 비교적 간결했다.
반면, 조선 후기(영조~고종 시기)는 궁중 의례와 격식이 강화되며 음식 종류가 다양화되었다.

(1) 조선 전기: 실용과 절제

  • 7~9첩 반상 중심
  • 국물과 밥 위주의 실속형
  • 지방 진상품에 따라 단일 품목 사용

(2) 조선 후기: 형식과 다채로움

  • 12첩 또는 15첩 구성 등장
  • 진미, 보양식, 이색적인 재료 사용 증가
  • 외국 사신 접대용 별도 상차림 존재

특히 영조와 정조는 건강에 민감해 식이요법을 강조했고, 어의 및 수라간과의 긴밀한 협업을 통해 의료적 식단 조절을 실천했다.

결론

조선 왕실의 식탁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철저하게 짜인 정치적 상징이자 예의의 구현, 그리고 건강과 위계의 통합된 시스템이었다. 반찬의 수는 단순한 숫자가 아닌, 왕의 권위를 상징했고, 음식의 배열은 사회 질서를 반영했다. ‘12첩 반상’이라는 형식은 역사 속에서 유연하게 조정되었고, 그것이 곧 왕권, 건강, 계절, 정치 환경의 변화를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조선의 궁중 음식에서 음식이 지닌 사회적 의미와 문화적 품격을 되새길 수 있다. 왕실의 식탁은 조선이라는 나라의 얼굴이었다.